연못으로 떠내려온 이미지 사이를 떠도는 기억질환자의 의자

프로젝트레벨나인, 연못으로 떠내려온 이미지 사이를 떠도는 기억질환자의 의자,  디지털 패널, 의자, VR, 가변 사이즈, 2018

 

‘기억은 포착했다고 믿고 싶은 한 장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사방으로 끌어당기는 긴장 관계의 운동으로 이루어진다. 이미지는 아카이브의 일부이지만, 기억 속 이미지는 한 장의 층이기보다는 그 틈에 낀 흔적에 가깝다. 그래서 기억은 문서고에 쌓아올릴 수 있는 불변의 건축이 아니다. 오히려 아카이브가, 혹은 역사가 쌓아 올리는 기둥 사이로 들어가는 틈입자다. 상태보다는 운동에 가까운 기억은 필연적으로 생채기를 남긴다. 영원히 기억하려는 기념비에 대한 집착과 더 많이 기억하려는 저장용량에 대한 집착 앞에서 기억질환을 앓는다. 기억과 망각의 그다음 공모 행위를 여기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만약 매 순간 눈 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기억할 수 있다면 축복이라고 해야 할까? 혹은 병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기억질환자는 푸네스(Funes the Memorious)이다. 그리고 전시에 등장하는 의자는 그가 마지막에 누워서 밤새도록 창 밖을 바라보던 의자다.

 

이번 작업은 기억을 향한 꿈을 다루고 있다. 꿈은 여러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해볼 수 있다. 우선 시작을 알 수 없어 계속 이어지는 꿈이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는 꿈은 꽤나 오래전부터, 문자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고대 그리스부터 등장하는 원과 기둥(상상의 극장, loci), 그리고 문자(기억의 수레바퀴), 숫자(0,1,0-1)에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자 하는 욕망이 담겨 있다. 어떻게 보면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기억술(Mnemonics)에 대한 쉼없는 열망은 모든 형태의 기억술이 결국에는 실패하리라는 근원의 불안감이다.

 

두 번째는 서로 다른 세계가 포개진 중첩(superposition)으로서의 꿈이다. 우리는 꿈에서 현실을 느끼고, 현실에서 꿈같은 순간을 겪는다. 기억은 절대 혼자 있지 않고, 언제나 망각과 포개어져 있어 몽환적이다. 기억은 망각의 반대가 아니라, 오히려 그 망각과 겹을 이루고 있다. 기억-망각은 의자 주변에 놓인 일상의 사물들처럼 끊임없이 시간이 흐르는 운동 위에 놓여 있다. 기억은 시간 안에서 운동에 가깝고, 동시에 여러세계의 결이 겹쳐져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기억 혹은 망각으로 우리에게 흔적을 남긴다. 각각의 패널은 전시장에 걸린 현실의 일부이지만, 그 안의 사물은 현실을 담은 가상이기도 하다. 기억-망각은 0 혹은 1이라는 하나의 진실이 무의미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마지막으로 불가능을 의미하는 꿈이다. 우리도, 데이터도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 기억은 대상의 아카이브(기록)이고, 외부세계가 없는 아카이브는 없으니 전체를 담는 기억이란 불가능하다. 혼합현실 기기는 불가능의 세계를 보여주는 매체이자, 기억의 극장이다. 동그란 기둥 사이로 둘러싸인 연못(레테, 므네모시네)으로 흘러 들어오는 빛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지만 배 안에서 우리는 단 한 장도 건져내지 못 한다. 어둠은 단순히 시야를 가리는 어둠이 아니라, 불가능의 어둠이다. 세계를 담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억-망각은 오히려 힘을 가진다. 푸네스처럼 우리도 물이 없는 곳에서 익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불가능의 어둠을 뚫고 싶다.

 

우리는 왜 익사의 죽음을 무릅쓰며 기억의 꿈을 놓지 못 하는가? 무한의 시간 안에서 기억은 세워지고, 스러짐을 기다리는 탑과 같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망각의 연못 안에서 계속해서 탑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기억-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실이 되어 미로 속 우리가 기억한다고 믿는 길로 이끈다. 보르헤스의 서투른 기억력이 푸네스를 기억의 천재로 만든 것처럼, 언제나 우리의 서투른 기억력은 세상을 기억이 가득한 가상세계로 만들어 낸다.

 

연못으로 떠내려온 이미지 사이를 떠도는 기억질환자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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